세라마이드 제품을 꾸준히 발랐는데도 장벽이 도통 회복되지 않는다면, 혹시 세라마이드만 보고 계신 건 아닐까요?
저도 정확히 그랬습니다.
잦은 각질 제거와 자외선차단제 미사용, 기능성 성분 과다 사용으로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판테놀 제품에만 의지했는데, 진정은 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무너지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세라마이드를 추가하고 나서도 뭔가 아쉬운 느낌이 계속 들었는데, 그 이유가 세콜지, 즉 세라마이드·콜레스테롤·지방산을 함께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장벽이 무너지면 생기는 일, 자가 진단까지
피부 장벽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기능적으로 보면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는 아무리 좋은 제품을 발라도 유효 성분이 피부 속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세균이나 박테리아가 침투하면서 여드름, 가려움, 만성 건조함 같은 트러블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장벽이 살아있어야 그 위에 올리는 레티놀도, 순수 비타민 C도 제 기능을 하는 것이지, 무너진 상태에서는 자극만 줄 뿐입니다.
그렇다면 내 장벽이 무너진 건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판단 기준은 세 가지입니다.
- 육안으로 봐도 티가 날 정도의 각질, 홍조, 주사 피부염이 있는 경우
- 미스트를 뿌린 후 오히려 피부가 더 당기고 건조해지는 경우
- 나이아신아마이드 고함량(10% 내외)이나 순수 비타민 C, 또는 3% 미만의 글라이콜릭 애시드를 발랐을 때 따가움이 느껴지는 경우
세 번째 경우가 저한테 해당됐습니다.
겉으로 껍질이 벗겨지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쓰던 기능성 제품에서 따가움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때는 그냥 피부가 예민한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그게 이미 장벽이 약해졌다는 신호였던 겁니다.

세콜지 비율이 핵심인 이유
세콜지 성분이 들어간 제품이라고 해서 다 같은 효과를 내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세라마이드·콜레스테롤·지방산의 비율입니다.
피부 지질 이중층(Lipid Bilayer)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피부 각질층을 구성하는 지방 구조로, 이 구조가 촘촘히 쌓여있을수록 외부 자극을 막고 수분을 붙잡아두는 능력이 높아집니다.
세 가지 비율을 달리해서 장벽 회복 속도를 비교한 임상 연구에 따르면, 콜레스테롤 비율이 가장 높은 3:1:1 비율(콜레스테롤:세라마이드:지방산)이 3시간, 6시간 시점 모두에서 장벽 회복 속도가 더 빠르게 나타났습니다.(출처: Journal of Investigative Dermatology).
반면 지방산이 2배 이상 높은 비율은 장벽 개선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허탈했습니다.
그동안 제품에 세라마이드라고 적혀 있으면 일단 좋겠지 하고 골랐는데, 사실 그 안에서 지방산이 앞쪽에 잔뜩 배치된 제품을 쓰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장벽 개선 목적이 아니라 보습 목적으로 설계된 제품을 장벽 회복용으로 쓰고 있었던 셈이니까요.
세라마이드 종류까지 봐야 하는 이유
세라마이드가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공부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피부 내에는 세라마이드 NP, EOP, NS, EOS 등 종류가 상당히 많은데, 그중에서도 세라마이드 EOP처럼 탄소 체인이 긴 장쇄 세라마이드(Long-chain Ceramide)가 지질 이중층을 더 단단하게 결속하는 역할을 합니다.
장쇄 세라마이드란 분자의 꼬리 부분이 길어서 지질층을 넘어 인접 층까지 걸쳐 묶어주는 구조를 가진 세라마이드를 의미합니다.
전 성분에서 EO로 시작하는 세라마이드가 표기되어 있다면 이 장쇄 세라마이드가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피토스핑고신(Phytosphingosine)이 함께 들어간 제품이 장벽 개선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피토스핑고신이란 세라마이드 합성의 전구체로 작용하는 성분으로, 피부 자체적인 세라마이드 생성을 도와 지질 구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세라마이드 종류 하나만 들어간 것보다 NP, EOP처럼 여러 종류가 함께 들어간 제품이 더 나은 이유도 이 구조 때문입니다. 피부 속 지질층은 단일 세라마이드 하나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으니까요.
성분 기준으로 제품 고르는 법
이 모든 걸 정리하고 나면 제품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기준이 좀 더 명확해집니다. 저는 이제 전 성분을 볼 때 세 가지를 순서대로 체크합니다.
- 지방산이 콜레스테롤보다 앞쪽에 배치되어 있지 않은가 (장벽 개선 목적이라면 콜레스테롤 비중이 높아야 함)
- 세라마이드 함량이 전체 세콜지 기준으로 2% 이상인가 (논문 실험 기준 수치)
- EO로 시작하는 장쇄 세라마이드나 피토스핑고신이 포함되어 있는가
세콜지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제품을 고르는 기준도 훨씬 단순해집니다. 예전에는 '세라마이드 함유'라는 문구만 보고 제품을 선택했다면, 지금은 그 안에 어떤 지질 구조가 들어가 있는지를 먼저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전 성분을 확인했을 때 세라마이드만 단독으로 들어가 있는 경우보다 콜레스테롤과 지방산이 함께 배합된 제품이 장벽 회복 복적에 더 적합합니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존재해야 피부 지질층이 실제 구조처럼 재현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성분의 '배치 순서'입니다.
전 성분표는 함량이 높은 순서대로 나열되기 때문에, 콜레스테롤이나 세라마이드가 뒤쪽에 밀려 있다면 장벽 개선보다는 단순 보습 목적에 가까운 제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지질 성분이 비교적 앞쪽에 위치해 있다면, 장벽 회복을 고려해 설계된 제품일 확률이 높습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놓치는 부분이 제형입니다. 크림이 무겁고 오일리하다고 해서 장벽회복에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지질 비율이 더 중요합니다.
겉에서 느껴지는 촉촉함과 피부 구조를 복구하는 기능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제형 위주로 제품을 선택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건조함이 올라오는 경혐을 반복했습니다.
그때는 보습이 부족한 줄 알고 더 무거운 제품으로 바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장벽 자체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겉만 덮고 있었던 셈입니다.
결국 기준을 성분으로 바꾸고 나서야 제품 선택이 훨씬 단순해졌습니다. 세라마이드가 들어갔는지 보다, 세콜지 구조가 맞는지, 장쇄 세라마이드나 전구체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그 이후부터는 제품을 바꿀 때마다 피부 반응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